어느 날부터 팀장들이 전화기 앞에 앉기 시작했습니다.
호주의 한 대형 은행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2025년 7월, 이 은행은 고객센터 인력 45명을 줄였습니다.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AI 음성봇을 도입했고, 걸려오는 전화가 줄었다는 판단이었습니다.
그런데 전화는 줄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늘고 있었습니다.
받을 사람은 적어졌는데 전화는 많아졌으니, 남은 사람들이 감당해야 했습니다. 결국 관리 업무를 하던 팀장들까지 고객 전화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몇 주 뒤 은행은 결정을 되돌렸습니다.
회사는 판단 과정에서 고려했어야 할 사업상 요소들을 충분히 살피지 못했고, 그 결과 해당 직무를 없애도 된다는 판단이 적절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설명했습니다.
45명을 줄인 판단이 몇 주를 버티지 못한 것입니다.
숫자부터 보겠습니다
이게 한 회사의 실수였다면 그냥 지나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여러 조사에서는 비슷한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는 신호가 나옵니다.
International Business Times UK는 Forrester와 Orgvue 등의 자료를 인용해 AI를 이유로 인력을 줄인 기업의 55%가 이후 그 결정을 후회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 수치는 조사기관 자료를 재인용한 것이므로 표본과 조사방식을 감안해 읽을 필요는 있습니다.
그래도 절반을 넘는 기업에서 비슷한 문제가 나타났다는 신호는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Careerminds의 자체 조사에서도 비슷한 방향이 나타났습니다.
Careerminds는 2026년 2월, 지난 12개월 동안 감원을 집행한 HR 전문가 600명을 조사했습니다.
AI를 이유로 인력을 줄인 기업 가운데 32.7%는 줄였던 직무의 25~50%를 이미 다시 채용했고, 35.6%는 절반 이상을 다시 채용했다고 응답했습니다.
재고용도 빨랐습니다.
52.1%는 6개월 안에 줄였던 역할을 다시 채용했습니다.
여기에 Gartner의 장기 전망까지 겹칩니다.
Gartner는 2026년 9월, AI로 대체된 직원 가운데 최대 30%가 2029년까지 다시 채용될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이유는 단순히 AI가 생각보다 일을 못해서가 아닙니다.
성급한 감원으로 인재 파이프라인과 조직 지식이 약해지면, 이후 더 높은 비용을 들여 사람을 다시 뽑고 교육하고 업무에 적응시켜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Careerminds가 이미 벌어진 재고용을 보여준다면, Gartner의 전망은 이 문제가 일시적인 되돌림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세 자료의 성격은 서로 다릅니다.
55%는 Forrester·Orgvue 자료를 재인용한 현재 신호이고,
Careerminds는 HR 담당자 600명을 대상으로 한 실제 재고용 경험 조사이며,
Gartner의 30%는 2029년까지를 내다본 전망입니다.
따라서 숫자를 하나의 확정된 비율처럼 합쳐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서로 다른 자료가 가리키는 방향은 비슷합니다.
AI는 반복적이고 정형화된 업무를 빠르게 흡수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 업무와 함께 붙어 있던 판단, 조율, 예외 처리, 고객 맥락, 그리고 조직 안에 축적된 지식까지 함께 가져가는 것은 아닙니다.
기업은 한 사람의 일을 ‘처리 건수’로 계산했지만, 실제 그 사람이 하고 있던 일은 건수보다 많았던 것입니다.
줄이는 쪽도 공짜가 아닙니다
“잘못 줄였으면 다시 뽑으면 되지 않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시 뽑는 데는 비용이 듭니다.
Orgvue는 감원으로 인건비 1달러를 줄일 때 평균 1.27달러의 숨은 비용이 발생한다고 분석했습니다.
퇴직 비용뿐 아니라 생산성 저하, 추가 이직, 조직 혼란 같은 비용을 포함한 계산입니다.
Careerminds의 자체 조사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나타났습니다.
AI를 이유로 사람을 줄였다가 다시 채용한 기업 가운데 30.9%는 재고용 비용이 처음 절감한 금액보다 더 컸습니다.
42.37%는 재고용 비용이 절감액과 상쇄됐습니다.
비용상 이득을 봤다고 답한 곳은 26.69%였습니다.
따라서 “넷 중 셋이 손해를 봤다”고 읽으면 틀립니다.
손해를 본 기업은 약 31%입니다.
약 42%는 본전이었습니다.
다만 약 73%는 감원과 재고용을 거친 뒤에도 명확한 비용상 이득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 계산에는 조직 신뢰나 직원 사기 저하 같은 비용은 들어 있지 않습니다.
다시 뽑아도 돌아오지 않는 것
1.27달러라는 숫자만 보면 회계 문제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 비용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사람은 다시 뽑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갖고 있던 경험은 같은 방식으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어떤 고객이 어떤 말에 화를 내는지.
어느 요청은 규정대로 처리하면 나중에 더 큰 문제가 되는지.
지난번 예외 상황에서는 왜 그런 판단을 했는지.
문서에는 없는 판단 기준이 있습니다.
사람 안에 쌓여 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조직을 떠나면 그 경험도 함께 빠져나갑니다.
새로 온 사람은 다시 배워야 합니다.
그동안 실수가 납니다.
옆 사람이 붙어 가르칩니다.
고객은 기다립니다.
AI가 줄인 것은 업무량이었지만, 조직이 함께 잃은 것은 판단과 맥락일 수 있습니다.
클라르나가 겪은 것도 비슷했습니다
스웨덴 핀테크 기업 클라르나는 AI 고객상담 도우미가 상담원 약 700명에 해당하는 업무량을 처리한다고 발표하면서 크게 주목받았습니다.
초기 수치는 인상적이었습니다.
응답 속도는 빨라졌고, 대량의 문의를 AI가 처리했습니다.
비용절감 효과도 컸습니다.
하지만 이후 회사는 고객서비스 품질 문제를 공개적으로 인정했습니다.
CEO는 비용절감을 지나치게 우선한 결과 서비스 품질이 낮아졌다고 설명했고, 고객이 원하면 실제 사람과 연결될 수 있어야 한다는 방향으로 다시 조정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클라르나가 AI를 포기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AI 상담은 계속 남았습니다.
바뀐 것은 역할 배분이었습니다.
처리 건수만 보면 AI는 성공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객서비스라는 업무 전체를 보면 다른 질문이 남았습니다.
AI가 처리한 700명분의 업무량 말고, 그 700명이 건수 밖에서 하고 있던 일은 무엇이었는가.
복잡한 예외를 다루는 일.
불만을 가라앉히는 일.
맥락을 읽는 일.
회사 규정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판단하는 일.
이런 부분까지 함께 계산했는지를 다시 물어야 했습니다.
유행하는 사례는 한 번 더 확인해야 합니다
AI 감원 이야기에는 과장도 많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IBM입니다.
온라인에서는 IBM이 AI 때문에 HR 인력 수천 명을 줄였다가 결국 그 사람들을 다시 뽑았다는 식의 이야기가 퍼졌습니다.
실제 공개된 내용은 다릅니다.
IBM CEO 아르빈드 크리슈나는 AI와 자동화로 대체된 HR 역할이 수백 개 수준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줄어든 비용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영업, 마케팅 같은 다른 영역의 채용에 다시 투입했습니다.
2023년 크리슈나는 HR의 몇백 개 역할을 줄이는 동안 다른 분야에서 약 8,000명의 인원을 늘렸다고 말했습니다.
이후에도 IBM은 AI로 일부 HR 역할을 자동화했지만 전체 고용은 오히려 증가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즉 사실은
“AI 때문에 수천 명을 잘랐다가 다시 뽑았다”
가 아니라,
“반복적인 HR 업무 일부를 자동화하고, 그 자원을 다른 업무와 인력으로 이동시켰다”
에 가깝습니다.
교훈이 선명한 사례일수록 사실 확인이 더 필요합니다.
그래서 앞의 55%, 1.27달러, 30.9% 같은 수치도 절대적인 법칙처럼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각각 조사기관이나 컨설팅사의 표본과 방법론에서 나온 결과입니다.
다만 서로 다른 자료들이 비슷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고, 무엇보다 호주 은행과 클라르나처럼 실제 기업이 판단을 수정한 기록이 있다는 점은 남습니다.
되돌아온 자리는 예전 자리가 아닙니다
다시 사람을 뽑는다고 해서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도 아닙니다.
일부 기업은 같은 역할을 다시 만들더라도 다른 지역으로 옮기거나, 계약 형태를 바꾸거나, 기존보다 낮은 조건으로 다시 채용할 수 있습니다.
즉 결정을 내린 것은 회사지만, 되돌리는 과정에서 생기는 비용 일부를 노동자가 부담할 수도 있습니다.
이 문제는 효율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신뢰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한번 “이 역할은 없어질 수 있다”는 경험을 한 조직에서 다음에 회사가 새로운 자동화를 추진할 때 구성원들이 그 결정을 얼마나 신뢰할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순서가 뒤집혀 있었습니다
이 사례들을 나란히 놓으면 공통점이 하나 보입니다.
일을 옮기는 것부터 했습니다.
AI를 들였습니다.
그다음 사람을 줄였습니다.
그 사이에 있어야 할 단계들이 빠졌습니다.
하나. 일이 실제로 어떻게 흐르는지 봤어야 합니다
은행의 논리는 아마 이랬을 것입니다.
음성봇을 들였다.
봇이 전화를 받는다.
사람에게 오는 전화가 줄었다.
사람이 덜 필요하다.
표면적으로는 이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두 가지 위험이 있습니다.
첫째, 전제 자체가 틀릴 수 있습니다.
봇이 처리한 건수가 늘었다고 해서 사람이 받는 전화가 자동으로 줄어드는 것은 아닙니다.
전체 문의가 더 빠르게 늘고 있다면 사람에게 오는 전화도 함께 늘 수 있습니다.
봇이 500건을 처리했는데 전체 문의가 600건 늘었다면, 사람의 일은 오히려 100건 늘어난 것입니다.
둘째, 설령 문의 건수가 줄어도 인력을 같은 비율로 줄일 수 있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쉬운 문의는 AI가 가져갑니다.
그러면 사람에게 남는 것은 더 복잡한 문의입니다.
건수는 줄어도 통화시간은 길어질 수 있습니다.
판단이 더 많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일의 양은 줄고, 일의 무게는 늘어날 수 있습니다.
둘. 사람에게 무엇이 남는지 정했어야 합니다
AI가 일을 가져가면 사람에게는 무엇이 남습니까.
이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사람부터 줄이면 남은 일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 갑니다.
호주 은행에서는 그 사람이 팀장이었습니다.
팀장이 하루 몇 시간을 고객전화에 쓰면 원래 팀장이 하던 관리 업무는 미뤄집니다.
비용이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다른 곳으로 옮겨간 것입니다.
줄어든 인건비는 장부에 찍힙니다.
팀장이 못 한 일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처음 몇 달 동안은 성공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셋. 어디서 멈출지 정했어야 합니다
어떤 문의는 AI가 끝까지 처리해도 됩니다.
배송 조회처럼 기준이 명확한 문의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환불 분쟁, 연체 상담, 복잡한 불만, 예외 상황은 다릅니다.
이 경우에는 사람에게 다시 넘기는 기준이 필요합니다.
고객이 사람과 이야기하고 싶다고 요청하면 어떻게 할 것인지도 정해야 합니다.
어떤 품질 지표가 어느 수준을 넘으면 사람을 다시 투입할지도 미리 정할 수 있습니다.
만족도.
재문의율.
민원 증가.
해결 시간.
이 가운데 무엇을 볼 것인가.
그리고 어느 수준에서 자동화를 줄일 것인가.
클라르나의 이후 대응은 이런 질문이 왜 필요한지를 보여줍니다.
미리 정해두면 한도이고, 문제가 생긴 뒤 정하면 수습이 됩니다.
넷. 그다음이 옮기는 것입니다
앞의 세 단계가 끝난 뒤에야 업무를 AI로 옮기는 것이 안전합니다.
그리고 일을 AI로 넘기는 결정과 사람을 줄이는 결정은 가능하면 분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일부 업무를 AI에 맡깁니다.
정해둔 기준으로 일정 기간 관찰합니다.
사람의 실제 업무량이 줄었는지 봅니다.
남은 일이 얼마나 어려워졌는지 확인합니다.
고객 품질이 유지되는지도 봅니다.
그다음 인력 조정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시스템을 바꾸는 결정은 비교적 되돌리기 쉽지만, 사람을 내보낸 결정은 그렇지 않습니다.
다섯. 판단이 남아야 합니다
마지막은 기록입니다.
사람이 나갈 때 함께 사라지는 것을 조직에 남기는 단계입니다.
하지만 결과만 남겨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 건은 예외 처리함.”
이렇게 적어두면 다음 사람이 배울 수 없습니다.
그때 어떤 상황이었는지.
무엇을 봤는지.
왜 그 정보를 충분하다고 판단했는지.
어떤 위험을 감수했는지.
왜 예외를 허용했는지.
이런 판단의 맥락이 남아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이 바뀌어도 조직이 같은 문제를 처음부터 다시 배우지 않습니다.
없으면 새로 온 사람이 다시 경험하고, 다시 실수하고, 다시 배웁니다.
자동화 후 되돌리는 비용의 일부는 바로 이 재학습 과정에서 생깁니다.
일의 흐름을 본다
→ 사람에게 남는 일을 정한다
→ 멈출 지점을 정한다
→ 옮긴다
→ 판단을 남긴다
이름보다 중요한 것은 순서입니다.
이번 사례들의 문제를 가장 짧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넷째를 첫째로 했습니다.
먼저 옮겼고, 나머지를 나중에 확인했습니다.
리더에게 남는 질문
AI를 도입한 뒤 일이 줄었다고 판단할 때,
무엇을 보고 줄었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처리 건수입니까.
응답시간입니까.
사람에게 넘어오는 실제 업무량입니까.
그 일이 AI로 넘어갈 때,
사람에게 남는 일은 무엇입니까.
정해두지 않으면 누군가가 알아서 메웁니다.
그건 효율이 아니라 미뤄진 비용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나갈 때,
그 사람이 알고 있던 것 가운데 무엇이 조직에 남습니까.
답할 수 없다면 그 사람이 떠나는 순간 조직도 함께 잊습니다.
다시 배우는 비용은 몇 달 뒤에 나타납니다.
되돌린 결정이 보여주는 것
AI 도입 뉴스는 대체로 앞으로 가는 이야기입니다.
더 많이 자동화했습니다.
더 적은 사람이 일합니다.
더 빨라졌습니다.
하지만 실제 변화는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지 않습니다.
AI를 넣었다가 사람을 다시 넣습니다.
줄였던 역할을 되살립니다.
새로운 검토 단계를 만듭니다.
자동화 범위를 줄입니다.
호주 은행은 사람을 줄였다가 몇 주 만에 결정을 되돌렸습니다.
클라르나는 AI를 계속 사용하면서 인간 고객지원의 위치를 다시 조정했습니다.
이 사례들의 핵심은 AI가 실패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처음 정한 자동화의 범위와 기준을 실제 결과를 보고 수정했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더 중요한 질문이 남습니다.
AI 도입의 성공은 처음부터 정확한 답을 맞히는 것일까요.
아니면 결과가 예상과 달라졌을 때 판단을 다시 열 수 있는 구조를 갖는 것일까요.
참고한 공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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