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공고는 의외로 조직 변화가 먼저 드러나는 문서입니다.
조직개편은 늦게 일어납니다.
직급체계와 평가제도는 더 늦게 바뀝니다.
하지만 지금 필요한 사람이 달라지면 채용공고의 문구와 직무 이름부터 움직입니다.
최근 디자이너 채용공고와 기업의 직무 개편 자료를 보다 보니 한 가지 변화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이런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디자이너도 코딩을 해야 하나?”
그런데 자료를 직접 읽어보면 조금 다른 변화가 보입니다.
AI가 새로운 도구 하나를 추가한 것이 아니라, 회사가 디자이너의 일을 어디까지로 보고 무엇을 기준으로 직무를 나눌 것인지 다시 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변화가 가장 선명하게 보이는 두 회사가 토스와 당근입니다.
흥미롭게도 두 회사의 선택은 정반대입니다.
토스는 직무를 줄였고,
당근은 새로운 직무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유를 따라가 보면 두 회사는 오히려 같은 문제를 보고 있습니다.
토스는 디자인 직무 여섯 개를 두 개로 줄였습니다
2026년 4월 1일, 토스 디자인 챕터의 직무 체계가 바뀌었습니다.
기존 여섯 개 직무가 두 개로 통합됐습니다.
Product Designer와 Tools Product Designer는 Product Designer로 합쳐졌습니다.
Platform Designer, Interaction Designer, Graphic Designer, Brand Designer는 Visual Designer로 통합됐습니다.
중요한 것은 여섯 개가 두 개가 됐다는 숫자가 아닙니다.
왜 합쳤느냐입니다.
토스는 기존 직무가 실제로 무엇을 판단하고 어떤 결과를 책임지는가보다,
어떤 도구나 영역을 다루는가를 기준으로 너무 잘게 나뉘어 있었다고 봤습니다.
그런데 실제 업무는 그렇게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디자인 시스템에 인터랙션을 넣을 때는 누구의 일인지 경계가 애매해집니다.
PC에서 만든 경험을 모바일로 옮길 때는 제품과 사용자 맥락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아니라 화면 종류에 따라 담당이 갈릴 수 있습니다.
조직도와 직무명은 분명한데 실제 일은 그 경계를 계속 넘나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AI를 포함한 제작 도구의 발전은 이 문제를 더 크게 만듭니다.
예전에는 특정 결과물을 만들려면 특정 도구를 오랫동안 익혀야 했습니다.
하지만 AI가 코드, 이미지, 프로토타입, 인터랙션 제작의 진입 장벽을 낮추면 도구 숙련만으로 직무를 나누기가 점점 어려워집니다.
그러면 다른 차이가 중요해집니다.
무엇이 좋은 결과인지 알아보는가.
어떤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 이해하는가.
어떤 선택이 사용자와 제품에 더 적합한지 판단할 수 있는가.
토스가 직무를 합친 배경에는 이미 직무 경계를 넘어 일하고 있던 현실을 제도가 따라간다는 판단이 놓여 있습니다.
당근은 반대로 새로운 직무를 만들었습니다
당근은 정반대처럼 보이는 선택을 했습니다.
기존 직무를 합친 것이 아니라 디자인 시스템 팀에 Design Engineer라는 새로운 역할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공고를 읽어보면 왜 기존 Product Designer나 Frontend Engineer라는 이름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당근이 바라본 문제는 단순합니다.
프롬프트 한 줄로 그럴듯한 화면을 만드는 시대가 왔습니다.
하지만 그럴듯한 화면과 당근다운 제품 경험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AI는 화면을 빠르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당근의 제품 원칙, 사용자 경험, 디자인 언어, 예외 상황까지 자동으로 이해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이 역할이 해야 하는 일은 크게 두 방향으로 나뉩니다.
하나는 기본 품질이 무너지지 않게 하는 일입니다.
AI가 결과물을 만들더라도 일정 수준 아래로 내려가지 않도록 컴포넌트, 디자인 토큰, 패턴, 카피, 인터랙션 기준을 구조화합니다.
쉽게 말하면 AI가 무엇을 만들어도 최소한 “당근답지 않은 결과”는 나오지 않게 만드는 일입니다.
다른 하나는 더 좋은 경험의 가능성을 넓히는 일입니다.
단순히 틀리지 않은 화면을 만드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모션, 터치감, 상태 처리, 접근성, 피드백 같은 디테일까지 파고들어
“이 정도면 괜찮다”를 넘어 더 좋은 경험을 만들 수 있게 합니다.
이 지점에서 디자인 시스템의 역할도 달라집니다.
과거의 디자인 시스템은 주로 사람이 참고하는 공통 규칙이었습니다.
어떤 버튼을 쓰는지.
색상은 무엇인지.
간격은 어떻게 맞추는지.
컴포넌트는 어떤 원칙으로 만드는지.
디자이너와 개발자가 같은 언어를 쓰게 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그런데 AI가 실제 디자인 작업을 수행하기 시작하면 이 규칙은 사람만을 위한 참고서가 아닙니다.
AI가 작업할 때 따라야 할 기준이 됩니다.
당근은 이미 Kraft라는 디자인 에이전트를 실험하고 있습니다.
프롬프트로 디자인 시스템 기반 화면을 만들고,
디자인 의도를 구조화하고,
생성된 결과가 회사 기준에 맞는지 확인하고,
반복되는 디자인 결정을 축적하는 방향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변화가 하나 보입니다.
디자이너가 직접 결과물을 만드는 것뿐 아니라, AI가 무엇을 만들고 어떤 기준을 따라야 하는지를 설계하는 일이 새로운 업무가 되고 있습니다.
두 회사는 반대 방향이 아닙니다
한 회사는 직무를 줄였습니다.
다른 회사는 새 직무를 만들었습니다.
겉으로 보면 정반대입니다.
하지만 두 회사가 해결하려는 문제는 비슷합니다.
토스는 도구와 화면 영역을 기준으로 나뉘어 있던 직무 경계를 줄였습니다.
당근은 디자인과 구현이라는 기존 수단의 경계를 넘으면서,
AI까지 포함한 새로운 작업환경에서 품질 기준과 시스템을 책임질 역할을 만들었습니다.
즉 한쪽은 기존 직무 구분을 합쳤고,
다른 한쪽은 기존 구분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역할을 새로 만들었습니다.
도구와 수단을 기준으로 사람을 나누던 방식이 약해지고, 어떤 결과를 만들고 어떤 기준을 책임질 것인지 쪽으로 역할이 다시 정의되고 있습니다.
이게 지금 디자이너 채용공고와 직무체계에서 보이는 더 중요한 변화입니다.
그래서 답은 “디자이너도 코딩을 배워야 한다”가 아닙니다
최근 공고에서 가장 눈에 띄는 단어는 코드입니다.
그래서 이 변화를 쉽게 이렇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디자이너도 개발자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토스와 당근의 자료를 읽어보면 이게 핵심은 아닙니다.
당근은 코드가 좋은 제품 경험을 만드는 여러 수단 가운데 하나라고 설명합니다.
프론트엔드 기술 경험도 역할을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되는 요소이지,
디자이너를 개발자로 바꾸겠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토스 역시 도구를 다루는 능력의 차이가 줄어드는 상황을 직무체계 변화의 배경으로 봅니다.
즉 요구가 커지는 것은 단순한 기술의 개수가 아닙니다.
무엇이 좋은 결과인지 판단하는 능력.
어떤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 정의하는 능력.
어디까지가 허용 가능한 품질인지 정하는 능력.
반복되는 결정을 기준으로 만드는 능력.
AI가 결과물을 더 많이 만들수록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산출물을 직접 만드는 능력보다 결과를 구별하고 기준을 세우는 능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불편한 반론이 있습니다
직무 경계를 줄이는 것이 항상 좋은 일일까요.
토스의 직무 통합 발표에는 이런 취지의 반론도 따라붙었습니다.
판단력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정작 그 판단력을 길러온 전문영역의 경계를 허무는 것은 모순 아닌가.
스페셜리스트의 전문성이 희석되고,
회사가 사람을 더 유연하게 배치하기 위한 구조가 되는 것 아닌가.
공개 댓글의 익명 의견이므로 사실 근거로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질문 자체는 중요합니다.
판단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지 않습니다.
좋은 디자인과 나쁜 디자인을 구별하는 감각도 수많은 작업과 실패, 수정의 결과입니다.
특정 영역을 오래 다뤄보면서 무엇이 이상한지 알아보는 눈이 생깁니다.
그래서 직무 경계를 줄여 판단 범위를 넓히는 것과,
그만큼 넓어진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을 길러내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직무체계만 합친다고 사람이 곧바로 여러 영역을 잘 판단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토스 역시 직무체계를 바꾼 뒤 채용 기준, 온보딩, 성장 경로를 다시 설계하는 일이 남아 있음을 설명합니다.
직무의 경계를 넓히는 것과, 그 넓어진 범위를 판단할 사람을 길러내는 것은 같은 문제가 아닙니다.
즉 두 회사가 보여준 것은 완성된 답이 아닙니다.
오히려 새로운 질문이 시작됐다는 신호에 가깝습니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은 보입니다
이 변화가 토스와 당근만의 특수한 선택인지 확인하려면 해외 채용공고도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Cursor와 Vercel의 일부 디자이너 공고에서는 디자인 결과물을 개발팀에 넘기는 데서 끝나지 않고,
디자이너가 직접 작동하는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실험하는 역할까지 요구합니다.
Cursor의 Design Engineer는 디자인과 실제 UI 구현 사이를 연결합니다.
Vercel의 Product Designer는 Figma뿐 아니라 AI 기반 제작 도구를 이용해 작동하는 프로토타입을 만들도록 요구합니다.
Figma에서는 조금 다른 움직임이 보입니다.
현재 공식 채용 페이지에는 Product Designer, AI Models와 Design Program Manager, AI Evals 같은 역할이 올라와 있습니다.
이건 AI를 활용해 디자인을 만드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간 변화입니다.
AI 모델이 만든 결과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어떤 결과를 좋은 품질로 볼 것인지.
그 평가 과정을 제품과 디자인 조직 안에 어떻게 넣을 것인지.
이 자체가 새로운 역할이 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다만 이 세 사례를 토스·당근과 같은 사례라고 볼 필요는 없습니다.
토스와 당근은 직무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의 문제를 보여줍니다.
Cursor·Vercel·Figma는 한 직무가 어디까지 책임질 것인가가 넓어지는 사례에 더 가깝습니다.
AI가 제작의 일부를 대신하면서, 기존의 도구와 산출물만으로 역할을 정의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기업은 직무를 무엇을 기준으로 나누고 있을까요
이제 질문을 다시 조직으로 가져와야 합니다.
토스와 당근 사례가 흥미로운 이유는 “디자이너의 미래”를 보여주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기업이 사람의 일을 어떤 기준으로 나누고 있는지 다시 묻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직무도 과거의 수단을 기준으로 나뉘어 있지는 않을까요
토스에서는 화면 영역과 도구가 직무를 나누는 기준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실제 제품은 그 경계를 따라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다른 조직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채널별 마케터.
시스템별 개발자.
매체별 디자이너.
지역별 영업조직.
업무는 이미 경계를 넘고 있는데, 직무체계만 과거의 수단을 따라 나뉘어 있지는 않은지 볼 필요가 있습니다.
AI가 결과물을 만들 수 있게 됐는데도 사람을 산출물로 평가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당근의 사례가 던지는 질문입니다.
AI가 화면을 만들 수 있다면 디자이너의 가치가 화면을 얼마나 빨리 만들었는가에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무엇이 좋은 화면인지.
왜 이 화면이어야 하는지.
회사의 제품 경험에 맞는지.
어디까지 허용할지.
이런 기준이 더 중요해집니다.
그런데 평가제도는 여전히 산출물의 양과 속도를 중심으로 남아 있지는 않은지 봐야 합니다.
새로운 일이 생기면 직무를 합칠까요, 새로운 역할을 만들까요
토스와 당근이 서로 다른 답을 보여줍니다.
기존 직무 사이의 차이가 의미를 잃었다면 합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기존 어느 직무에도 담기 어려운 새로운 책임이 생겼다면 새 역할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직무 이름부터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실제 일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보는 것입니다.
그다음 질문은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기존 직무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가.
여러 직무를 합쳐야 하는가.
아니면 경계에 새로운 역할을 만들어야 하는가.
채용공고가 조직 변화보다 먼저 움직이고 있습니다
조직개편은 늦습니다.
평가제도는 더 늦습니다.
하지만 지금 필요한 사람이 달라지면 채용공고와 직무 설명부터 움직입니다.
토스는 여섯 개 디자인 직무를 두 개로 통합했습니다.
당근은 Design Engineer라는 새로운 역할을 만들었습니다.
선택은 반대였습니다.
하지만 그 아래에는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지금의 직무 구분이 실제 일을 제대로 설명하고 있는가.
AI는 이 질문을 더 빨리 드러내고 있습니다.
도구의 장벽이 낮아집니다.
한 사람이 더 넓은 범위의 결과물을 만들 수 있습니다.
AI가 일부 제작을 맡습니다.
그러면 과거에 사람을 나누던 기준도 흔들립니다.
하지만 여기서 곧바로 “직무가 사라진다”고 결론 내릴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먼저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변화는 다른 것입니다.
직무가 무엇을 만드는 사람인지보다, 무엇을 판단하고 어떤 결과를 책임지는 역할인지 다시 묻게 되는 것.
지금은 디자이너 채용공고에서 먼저 보입니다.
앞으로 다른 직무에서도 같은 질문이 나올 것입니다.
그래서 최근 디자이너 채용공고가 흥미로운 이유는 새로운 AI 도구가 등장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어쩌면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디자이너 직무의 변화가 아니라,
기업이 일을 어떻게 나누고 사람에게 무엇을 책임지게 할 것인지 다시 정하기 시작한 변화의 신호인지도 모릅니다.
참고한 공개 자료
- 토스 「토스가 디자인 직무를 2개로 줄인 이유」
- 토스 Product Designer Challenge 2026
- 당근 Design Engineer, 디자인 시스템
- 당근 SEED 디자인 시스템
- Cursor Design Engineer
- Vercel Senior Product Designer
- Figma Careers / Product Designer, AI Models / Design Program Manager, AI Eva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