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도입에 관한 논의는 대개 위에서 시작됩니다.

CEO가 AI 전략을 선언합니다.
이사회가 투자를 승인합니다.
전사 태스크포스가 만들어집니다.
벤더를 고르고, 교육 과정을 열고, 파일럿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면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도구는 들어왔는데 일하는 방식은 크게 바뀌지 않습니다.

일부 직원은 열심히 써보지만, 팀의 공식 업무 방식으로 자리 잡지는 않습니다.

어떤 팀은 AI 사용을 장려하고, 어떤 팀은 조심스럽게 피합니다.
어떤 곳에서는 AI가 혁신 도구가 아니라 보고용 활동이 됩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요.

2026년 9월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실린 Gleb Tsipursky의 글 「Middle Managers Will Make or Break AI Adoption」은 이 질문에 꽤 분명하게 답합니다. 생성형 AI 도입이 멈추는 지점은 대개 이사회도, 벤더도, 교육 프로그램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병목은 중간관리자 계층입니다.

이 주장은 낯설지 않습니다. 하지만 중요합니다.

AI 전략은 경영진이 세울 수 있습니다.
AI 도구는 IT 부서가 도입할 수 있습니다.
AI 교육은 HR이나 외부 기관이 운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AI를 팀의 실제 일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일은 결국 중간관리자의 몫입니다.

팀장은 매일 이런 결정을 합니다.

이 업무에 AI를 써도 되는가.
AI가 만든 초안을 어디까지 믿을 것인가.
누가 마지막으로 확인할 것인가.
어떤 결과는 바로 처리하고, 어떤 결과는 상위자에게 올릴 것인가.
성과는 기존 방식과 어떻게 비교할 것인가.
AI를 잘 쓰는 구성원과 그렇지 않은 구성원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

이 질문들은 전략 문서에 잘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실제 도입은 여기에서 갈립니다.

AI가 정식 업무 프로세스가 될지, 곁다리 실험으로 남을지, 규정준수용 형식 절차로 전락할지, 아니면 조직이 조용히 회피하는 대상이 될지는 현장 관리자 층에서 결정됩니다.

HBR 글이 흥미로운 이유는 중간관리자를 하나의 집단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저자는 관리자를 다섯 유형으로 나눕니다. AI 회의론자, 관망형 전통주의자, 신중한 실행자, 열정적 실험가, AI 촉매자입니다.

이 분류가 중요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모든 관리자에게 같은 메시지를 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부터는 HBR의 분류를 제 문제의식으로 조금 더 확장해볼 수 있습니다.

AI 회의론자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구호가 아니라, 위험을 다룰 수 있는 기준과 통제 장치입니다.
관망형 전통주의자에게 필요한 것은 압박이 아니라, 작은 성공 사례와 안전한 적용 범위입니다.
신중한 실행자에게 필요한 것은 명확한 가이드와 책임 경계입니다.
열정적 실험가에게 필요한 것은 자율성만이 아니라, 실험 결과를 조직의 기준으로 바꾸는 장치입니다.
AI 촉매자에게 필요한 것은 개인 역량 발휘의 기회가 아니라, 다른 팀으로 확산시킬 공식 역할입니다.

결국 AI 도입은 기술 확산이 아니라 업무 전환입니다. 그리고 업무 전환은 늘 중간관리자를 통과합니다.

출간 예정인 『일을 움직이는 리더십』에서 제가 붙잡고 있는 문제도 바로 이 지점입니다.

이 책이 묻는 질문은 “좋은 리더는 어떤 사람인가”가 아닙니다.
“리더가 AI를 얼마나 잘 쓰는가”도 아닙니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이것입니다.

왜 어떤 일은 지시해도 움직이지 않는가.
왜 어떤 팀은 리더가 없어도 일이 이어지는가.
왜 어떤 조직은 AI를 도입해도 일하는 방식이 바뀌지 않는가.

저는 그 차이가 리더 개인의 열정이나 구성원의 태도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일이 움직이려면 구조가 필요합니다.

누가 무엇을 맡는지 정해져야 합니다.
어디까지 판단할 수 있는지 정해져야 합니다.
어떤 조건에서 멈추고 다시 연결할지 정해져야 합니다.
결과를 누가 확인하고 끝낼지 정해져야 합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일을 움직이는 리더십”은 사람을 더 몰아붙이는 리더십이 아닙니다. 더 많은 회의를 여는 리더십도 아닙니다. 일을 실제로 움직이게 만드는 조건을 보는 리더십입니다.

그 조건은 크게 네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일의 단위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업무명만 보면 일이 보이지 않습니다. “고객 대응”, “채용”, “보고”, “교육 운영” 같은 이름만으로는 AI가 어디에 들어갈 수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실제로는 그 안에 요청 분류, 자료 탐색, 초안 작성, 예외 판단, 최종 승인, 기록 같은 작은 과업들이 있습니다. AI는 업무 전체가 아니라 이 과업 단위로 들어옵니다.

그래서 리더는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이 업무는 어떤 과업들로 나뉘는가.
AI가 맡을 수 있는 과업은 어디인가.
사람이 반드시 남아야 할 과업은 무엇인가.

둘째, 역량의 위치를 다시 봐야 합니다.

예전에는 역량을 주로 사람에게 붙여 보았습니다. 하지만 AI가 들어오면 어떤 역량은 사람에게 있고, 어떤 역량은 시스템에 있고, 어떤 역량은 외부 파트너에게 있습니다. 리더는 “누가 잘하는가”만이 아니라 “이 일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역량이 어디에 있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질문은 이렇게 바뀝니다.

이 역량은 사람에게 있는가.
시스템이 대신할 수 있는가.
외부 파트너가 더 잘할 수 있는가.
그 조합을 누가 관리할 것인가.

셋째, 판단의 경계를 정해야 합니다.

AI가 초안을 만들 수는 있습니다. 분류할 수도 있고, 추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결과를 받아들일지, 어떤 예외를 다시 볼지, 어디서 멈추고 누구에게 올릴지는 사람이 정해야 합니다. 이 경계가 없으면 AI는 일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흐리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팀에는 기준이 필요합니다.

어디까지 자동 처리할 것인가.
어디서 사람이 확인할 것인가.
어떤 경우에는 상위 판단으로 올릴 것인가.

넷째, 일의 끝을 정해야 합니다.

일은 누군가 “끝났다”고 말할 수 있어야 끝납니다. 보고서가 작성되었다고 일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고객 답변 초안이 나왔다고 일이 끝난 것도 아닙니다. 교육이 운영되었다고 역량 전환이 끝난 것도 아닙니다. 누가 확인했고, 어떤 기준으로 충분하다고 보았으며, 다시 열어야 할 조건은 무엇인지가 남아야 합니다.

끝을 정한다는 것은 이런 질문에 답하는 일입니다.

누가 최종 확인했는가.
무엇을 충분하다고 보았는가.
어떤 조건에서는 다시 열어야 하는가.

AI 시대 중간관리자의 역할은 바로 이 네 가지 조건을 현장에서 정리하는 데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고객 문의 처리 업무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한 기업이 고객센터에 AI를 도입했습니다. AI는 문의를 읽고, 유형을 분류하고, 과거 답변을 찾아 초안을 작성합니다. 처음에는 모두가 “응답 시간이 줄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곧 문제가 생깁니다.

반복 문의는 빨라졌지만, 예외 문의가 쌓입니다.
AI가 만든 답변을 상담원이 그대로 보내도 되는지 확신하지 못합니다.
어떤 문의는 보상 기준과 연결되고, 어떤 문의는 법무 검토가 필요합니다.
팀마다 처리 기준이 달라 고객 경험도 흔들립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AI를 더 써라”는 지시가 아닙니다.

문의 유형을 다시 나누어야 합니다.
자동 답변 가능한 범위를 정해야 합니다.
예외 문의의 상향 기준을 정해야 합니다.
최종 답변 책임자를 정해야 합니다.
처리 후 기록을 남겨 다음 판단 기준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이 일을 현장에서 실제로 정리하는 사람이 중간관리자입니다.

중간관리자는 위에서 내려온 전략과 아래에서 돌아가는 실제 업무 사이에 있습니다. 경영진은 AI로 생산성을 높이고 싶어 합니다. 구성원은 자신의 업무가 어떻게 바뀌는지 알고 싶어 합니다. IT는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려 합니다. HR은 교육과 역량 전환을 설계합니다.

그 사이에서 중간관리자는 전략을 업무로 번역해야 합니다.

이 번역은 단순한 전달이 아닙니다.
업무를 다시 쪼개고, 판단 기준을 정하고, 책임선을 다시 긋는 일입니다.

예전에는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처리하던 일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그 안의 일부를 AI가 가져갑니다. 자료를 찾고, 초안을 만들고, 이상 징후를 표시하고, 선택지를 제안합니다.

그러면 사람의 일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이동합니다. 확인하는 일, 해석하는 일, 예외를 판단하는 일, 마지막 책임을 지는 일이 남습니다.

문제는 많은 조직이 이 이동을 명시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AI를 도입했지만, 어떤 업무 단위에 적용할지는 흐릿합니다.
AI 결과를 누가 확인할지는 팀마다 다릅니다.
어디까지 자동 처리하고 어디서 사람이 개입할지는 경험에 맡깁니다.
실패하면 “현장이 따라오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현장이 따라오지 않는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현장이 번역할 구조를 받지 못한 것일 수 있습니다.

HBR의 문제 제기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중간관리자는 AI 도입의 저항 세력만이 아닙니다. 오히려 AI 도입이 실제 업무로 바뀌는 마지막 연결 지점입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종종 너무 적습니다. 위에서는 전략과 목표가 내려오고, 아래에서는 질문과 불안이 올라옵니다. 하지만 중간관리자가 사용할 기준, 권한, 시간, 지원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AI 도입은 중간관리자를 통과하면서 두 갈래로 나뉩니다.

하나는 진짜 업무 변화입니다.
다른 하나는 보고 가능한 활동입니다.

진짜 업무 변화는 팀의 루틴이 바뀌는 것입니다. 회의 전에 AI가 자료를 정리하고, 담당자는 그 결과를 검토한 뒤 판단 쟁점을 가져옵니다. 고객 문의는 AI가 1차 분류하지만, 예외 기준은 팀장이 정합니다. 보고서는 AI가 초안을 만들지만, 최종 메시지와 책임은 사람이 가집니다.

반면 보고 가능한 활동은 다릅니다. 교육 이수율이 올라갑니다. 사용 계정 수가 늘어납니다. 파일럿 사례가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실제 업무의 판단 구조는 그대로입니다.

이 차이를 가르는 사람이 중간관리자입니다.

그러므로 CEO와 CHRO가 물어야 할 질문도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 조직은 AI를 얼마나 도입했는가?”보다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우리 팀장들은 AI가 들어온 업무를 설명할 수 있는가.
AI가 맡을 일과 사람이 남아야 할 일을 구분할 수 있는가.
AI 결과를 어디까지 믿고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 알고 있는가.
구성원이 AI를 쓰다 막혔을 때 어떤 기준으로 도와야 하는가.
AI 사용을 성과와 책임의 언어로 바꿀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AI 도입은 중간관리자에게 부담으로 쌓입니다.

도구는 늘었는데 기준은 없습니다.
속도는 빨라졌는데 책임은 흐립니다.
실험은 많아졌는데 업무 방식은 바뀌지 않습니다.

AI 시대에 중간관리자의 역할은 줄어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어려워집니다. 예전의 관리자가 사람의 일을 배분하고 점검했다면, 이제의 관리자는 사람과 AI 사이의 일을 다시 설계해야 합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AI를 잘 쓰는 관리자”가 아닙니다.

필요한 것은 일을 움직이게 만드는 관리자입니다.

그는 기술 전문가일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업무를 쪼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판단이 필요한 지점을 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책임의 끝을 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팀원이 AI를 쓰는 방식을 성과와 학습으로 연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앞서 말한 『일을 움직이는 리더십』의 문제의식도 여기로 이어집니다.

AI 시대의 리더십은 더 많은 지시나 더 빠른 보고, 더 강한 통제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리더가 해야 할 일은 일이 움직이는 조건을 만드는 것입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보이게 하고,
누가 맡을 수 있는지 연결하고,
어디까지 판단할 수 있는지 정하고,
결과를 어떻게 확인할지 남기는 것.

AI가 조직에 들어올수록 리더십의 질문은 더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누가 AI를 쓰는가가 아닙니다.
어떤 일에 AI가 들어가는가입니다.
AI가 한 일을 누가 확인하는가입니다.
그 결과를 누가 끝내는가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팀의 방식으로 바꾸는 사람은 누구인가입니다.

결국 질문은 다시 돌아옵니다.

일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그리고 그 일을 움직이게 하는 리더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