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에이전틱 AI 시대, HR은 어떻게 바뀌는가’ 연재의 3편입니다.
앞선 글에서는 AI 파일럿의 함정과 HR 운영모델 변화를 살펴봤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AI가 초급 업무를 자동화할 때, 신입과 초기 경력자가 어디서 판단력을 배울 수 있는지 다룹니다.
AI가 반복 업무를 줄인다는 말은 이제 낯설지 않습니다.
자료를 정리합니다.
회의록을 요약합니다.
채용 후보자를 1차로 분류합니다.
고객 문의를 유형별로 나눕니다.
보고서 초안을 만듭니다.
교육 콘텐츠를 추천합니다.
조직 입장에서 보면 좋은 일입니다. 시간이 줄어듭니다. 반복 실수가 줄어듭니다. 숙련자가 더 중요한 일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놓치기 쉬운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그 반복 업무는 정말 단순히 없애도 되는 일이었을까요.
신입사원과 초기 경력자에게는 조금 다르게 보아야 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지루하고 낮은 수준의 업무처럼 보이는 일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일을 배우는 첫 번째 사다리였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맥킨지는 「Escaping the pilot trap: Building HR for the agentic era」에서 에이전틱 AI가 HR 업무를 빠르게 자동화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동시에 무엇을 에이전트에게 넘길지보다 더 어려운 질문은, 사람에게 어떤 역량을 의도적으로 키울 것인가라고 지적합니다. AI가 저난이도 업무를 가져가면, 신입이 그 일을 통해 배우던 도제식 성장 경로도 함께 흔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AI가 초급 업무를 대신할수록 조직은 단기 효율을 얻습니다.
하지만 잘못 설계하면 미래 전문가가 자라는 경로를 잃을 수 있습니다.
초급 업무는 정말 초급이었을까
조직 안에는 낮은 난이도의 업무가 많습니다.
자료 취합.
회의록 작성.
후보자 리스트 정리.
교육 신청자 관리.
인사 데이터 검산.
직원 문의 1차 응대.
보고서 초안 작성.
겉으로 보면 반복적이고 시간이 많이 듭니다. 그래서 자동화의 좋은 대상처럼 보입니다. AI가 하면 빠르고, 실수도 줄어들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업무들은 다른 기능도 갖고 있었습니다.
자료를 취합하면서 업무의 언어를 배웁니다.
회의록을 쓰면서 회의의 맥락과 의사결정 구조를 익힙니다.
후보자 리스트를 정리하면서 좋은 이력서와 애매한 이력서를 구분하는 감각을 배웁니다.
직원 문의에 답하면서 제도가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오해되는지 알게 됩니다.
데이터를 검산하면서 숫자가 어디서 틀어지는지 발견합니다.
초안을 쓰면서 상사의 피드백을 받습니다.
처음에는 단순 처리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관찰, 비교, 오류 발견, 맥락 이해, 작은 판단이 들어 있습니다.
신입은 이런 일을 하면서 조직의 언어를 배웁니다.
무엇이 중요한지 배웁니다.
어떤 표현이 위험한지 배웁니다.
어떤 숫자는 다시 확인해야 하는지 배웁니다.
어떤 예외는 혼자 처리하면 안 되는지 배웁니다.
초급 업무는 낮은 수준의 일이지만, 낮은 가치의 일은 아니었습니다.
AI가 가져가는 것은 업무만이 아니다
AI는 이 초급 업무를 빠르게 대체할 수 있습니다.
회의록은 자동으로 정리됩니다.
지원자 요약은 자동으로 생성됩니다.
직원 문의 답변은 챗봇이 제공합니다.
보고서 초안은 AI가 만듭니다.
교육 추천은 알고리즘이 합니다.
그러면 신입은 더 높은 수준의 일로 바로 이동할 수 있을까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습니다.
초급 업무를 건너뛴 신입에게 갑자기 더 복잡한 판단을 맡길 수는 없습니다. 기본 데이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모르는 사람이 데이터의 이상치를 해석하기 어렵습니다. 제도가 현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모르는 사람이 제도 개선안을 설계하기 어렵습니다. 후보자 정보를 직접 읽어본 경험이 부족한 사람이 AI 추천 결과의 미묘한 위험을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AI가 가져가는 것은 단순 업무만이 아닐 수 있습니다.
작은 오류를 발견하는 경험.
반복 속에서 패턴을 익히는 경험.
상사의 수정 의견을 받는 경험.
고객이나 직원의 질문을 직접 듣는 경험.
쉬운 판단에서 어려운 판단으로 올라가는 과정.
이 경험까지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동화는 단순히 “사람이 안 해도 되는 일”을 줄이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 일을 통해 사람이 무엇을 배우고 있었는지를 함께 봐야 합니다.
신입채용 축소는 왜 위험한 신호인가
이 문제는 이미 현실의 데이터에서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Gartner는 2026년 7월 발표에서 CHRO의 22%가 조직 내 적어도 한 명의 비즈니스 리더가 AI 자동화 때문에 일부 초급 직무 채용을 중단했다고 답했다고 밝혔습니다. 같은 조사에서 조직의 95%는 지난 1년간 어떤 형태로든 AI를 도입했지만, 상당하거나 변혁적인 가치를 얻었다고 답한 조직은 5곳 중 1곳에 그쳤습니다.
이 두 숫자를 함께 보면 중요한 질문이 생깁니다.
AI는 이미 도입되고 있습니다.
초급 채용도 일부 줄고 있습니다.
그런데 AI 도입의 가치는 아직 충분히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조직은 무엇을 줄이고 있는 것일까요.
정말 불필요한 업무만 줄이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미래의 인재가 일을 배우는 입구까지 줄이고 있는 것일까요.
초급 채용을 줄이는 것은 단기적으로 비용을 낮출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몇 년 뒤에는 중견 인재 부족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내부에서 조직의 언어와 맥락을 익힌 사람이 줄어들면, 외부에서 더 비싼 비용으로 경험자를 사와야 할 수 있습니다. 조직 고유의 지식이 끊길 수 있습니다. 관리자 후보군도 줄어듭니다.
AI가 신입의 일을 대신하는 것과, 신입이 필요 없어지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신입의 일이 바뀌면, 신입을 키우는 방식도 바뀌어야 합니다.
판단력은 어디서 생기는가
판단력은 강의실에서만 생기지 않습니다.
물론 교육은 필요합니다. AI 리터러시, 데이터 이해, 문제 해결, 커뮤니케이션, 윤리와 보안 교육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판단력은 실제 일을 통과하면서 만들어집니다.
처음에는 기준을 따라합니다.
그 다음 예외를 봅니다.
그다음 왜 이 예외가 중요한지 배웁니다.
그다음 스스로 판단해보고 피드백을 받습니다.
그다음 비슷하지만 다른 상황을 구분합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판단에 책임지는 경험을 합니다.
이 과정은 시간이 걸립니다. 반복도 필요합니다. 작은 실수도 필요합니다. 누군가의 피드백도 필요합니다.
AI가 이 과정의 앞단을 가져가면, 조직은 새로운 학습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예전에는 신입이 업무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배우던 것들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그것이 자연스럽게 주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조직은 묻어두었던 학습 경로를 드러내야 합니다.
어떤 경험을 반드시 거쳐야 하는가.
어떤 오류를 직접 찾아봐야 하는가.
어떤 판단은 AI 결과를 검토하며 배워야 하는가.
어떤 순간에는 선배가 코칭해야 하는가.
어떤 업무는 자동화하지 않고 학습용으로 남겨야 하는가.
AI 시대의 신입 육성은 교육 과정 하나를 추가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일을 배우는 경로를 다시 설계하는 문제입니다.
초급 업무를 모두 없애면 안 된다는 뜻은 아니다
그렇다고 반복 업무를 그대로 남겨두자는 뜻은 아닙니다.
비효율적인 업무를 학습이라는 이름으로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신입에게 단순 취합과 복사, 정리만 계속 맡기는 방식은 좋은 성장 경로가 아닙니다. “우리도 그렇게 배웠다”는 말로 낮은 가치의 일을 정당화해서도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구분입니다.
정말 없애도 되는 반복 업무가 있습니다.
AI에게 맡기되 사람이 검토해야 하는 업무가 있습니다.
학습을 위해 일부러 경험해야 하는 업무가 있습니다.
처음부터 사람이 판단해야 하는 업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회의록 작성은 AI가 초안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입이 아무것도 보지 않고 결과만 받으면 회의의 맥락을 배우기 어렵습니다. 이 경우 AI가 만든 회의록을 신입이 검토하고, 누락된 쟁점과 결정되지 않은 질문을 표시하게 할 수 있습니다.
이력서 스크리닝도 마찬가지입니다. AI가 후보자를 1차 분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입 리크루터가 AI 추천 결과를 비교해보고, 왜 어떤 후보가 경계선에 있는지 토론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직원 문의 응대도 AI가 기본 답변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입 HR 담당자가 반복 문의를 분석해 제도가 어디에서 오해되는지 정리하게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AI는 학습을 없애는 도구가 아니라 학습을 더 깊게 만드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핵심은 자동화 여부가 아닙니다.
그 업무가 어떤 학습 기능을 갖고 있었는지 먼저 확인하는 것입니다.
HR이 봐야 할 것은 Skill보다 Capability다
이 지점에서 Skill과 Capability의 차이가 중요해집니다.
Skill은 사람이 가진 능력 목록에 가깝습니다.
프롬프트를 쓸 수 있다.
엑셀을 다룰 수 있다.
데이터를 시각화할 수 있다.
AI 도구를 사용할 수 있다.
물론 필요합니다.
하지만 신입이 조직 안에서 성장하려면 Skill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실제 일이 요구하는 Capability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채용 업무에서 필요한 것은 단순히 AI 스크리닝 도구를 다루는 Skill이 아닙니다.
현업의 모호한 요구를 역할 요건으로 바꾸는 능력.
후보자 정보의 빈틈을 보는 능력.
AI가 놓친 예외를 발견하는 능력.
면접관의 평가 편향을 감지하는 능력.
후보자 경험을 해치지 않으면서 빠르게 조율하는 능력.
최종 추천에 책임질 수 있는 판단력.
이것이 Capability입니다.
AI 시대 L&D는 “어떤 스킬을 가르칠 것인가”에서 멈추면 안 됩니다. 이 일이 앞으로 어떤 Capability를 요구하는지, 그 Capability는 어떤 경험을 통해 자라는지, AI가 들어온 뒤 그 경험 경로가 어떻게 바뀌는지를 함께 봐야 합니다.
관리자의 역할도 달라진다
AI가 초급 업무를 가져가면 관리자의 역할은 줄어들까요.
오히려 더 중요해질 수 있습니다.
신입이 AI와 함께 일할 때 관리자는 다음을 도와야 합니다.
AI 결과를 그대로 믿어도 되는지 확인하는 법.
어떤 결과는 다시 봐야 하는지 구분하는 법.
왜 이 판단이 충분한지 설명하는 법.
어떤 위험을 감수하면 안 되는지 배우는 법.
AI가 만든 초안을 자기 언어로 바꾸는 법.
고객과 동료에게 책임 있게 설명하는 법.
예전에는 관리자가 결과물을 고치면서 신입을 가르쳤습니다. 이제는 AI가 만든 결과물과 신입의 이해 사이를 관리자가 연결해야 합니다.
이것은 새로운 코칭입니다.
단순히 “AI를 잘 써라”가 아닙니다.
“AI가 만든 것을 어떻게 의심하고, 검토하고, 자신의 판단으로 바꿀 것인가”를 가르치는 일입니다.
이 역할을 관리자에게 맡기려면 시간과 기준이 필요합니다. 관리자에게 코칭 시간을 주지 않고 신입에게 AI 활용만 요구하면, 학습은 개인에게 떠넘겨집니다. 그러면 신입은 빠르게 결과를 만들 수는 있지만,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충분히 설명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AI가 초급 업무를 줄이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흐름입니다.
하지만 초급 업무가 줄어든다고 신입의 성장이 자동으로 좋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잘못 설계하면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은 반복 업무가 아니라 판단력을 기르는 사다리일 수 있습니다.
조직은 더 이상 신입이 일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배울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AI가 초안을 만들고, 요약하고, 분류하고, 추천하는 시대에는 학습 경로도 의도적으로 설계해야 합니다.
어떤 일은 자동화해야 합니다.
어떤 일은 AI가 만들고 사람이 검토해야 합니다.
어떤 일은 학습을 위해 남겨야 합니다.
어떤 일은 처음부터 사람이 판단해야 합니다.
AI 시대 HR의 질문은 “신입에게 어떤 스킬을 가르칠 것인가”에서 멈추면 안 됩니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AI가 초급 업무를 가져간 뒤, 신입은 어디서 판단력을 배울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조직은 단기 효율을 얻는 대신 미래의 전문성을 잃을 수 있습니다.
AI는 초급 업무를 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래의 전문가를 키우는 일까지 대신해주지는 않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에이전틱 AI 시대에 HR 안에 새롭게 요구되는 네 가지 역할을 살펴보겠습니다.
출처
McKinsey, 「Escaping the pilot trap: Building HR for the agentic era」, 2026. 8. 4.
Gartner, 「Gartner Survey Finds AI Automation Is Reducing Some Entry Level Hiring at Nearly One-Quarter of Organizations」, 2026. 7.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