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킨지의 「The State of Organizations 2026」을 읽다가 두 대목에서 시선이 멈췄습니다.
하나는 AI가 반복적이고 행정적인 업무를 맡으면서 사람이 더 높은 가치의 전략적 업무와 문제 해결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다른 하나는 AI와 사람이 함께 일하는 조직일수록 판단, 신뢰, 공감과 같은 인간의 역량이 더욱 중요해진다는 내용입니다.
익숙한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AI는 실행하고, 사람은 판단한다.
그런데 보고서를 조금 더 깊이 읽으면 이 구분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맥킨지는 에이전틱 AI가 단순 반복 업무를 넘어 계획을 세우고 여러 단계를 실행하며, 상황에 따라 다음 행동을 조정하는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 과정에서 지금까지 사람이 맡아온 판단과 조정의 일부도 AI와 나누어 맡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야 합니다.
“AI가 실행하고 사람이 판단하는가?”가 아니라, “AI와 사람이 함께 일하는 과정에서 판단은 어디에서 일어나고, 누가 그 판단에 책임질 것인가?”라고 물어야 합니다.
맥킨지가 말하는 조직의 변화
맥킨지는 2026년 2월 19일 「The State of Organizations 2026」을 발표했습니다. 보고서에 수록된 글로벌 설문은 2025년 6월부터 9월까지 진행됐으며, 직원 1,000명 이상 조직의 리더와 관리자 10,018명이 참여했습니다.
보고서는 기술 변화, 경제적 불확실성, 인력구조의 변화가 동시에 조직을 재편하고 있다고 봅니다.
AI에 대한 전망도 단순한 자동화에 머물지 않습니다.
응답자의 53%는 앞으로 1~2년 동안 AI가 주로 반복 업무와 기본적인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도구로 활용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AI가 자율적인 동료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본 비율은 25%였습니다.
맥킨지가 특히 강조하는 것은 업무 자체의 재설계입니다. 업무 프로세스를 개별 활동으로 나누고 경제성, 윤리, 기술 성숙도를 고려해 무엇을 사람이 맡고 무엇을 AI 에이전트에게 맡길지, 둘은 어떻게 협업할지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어떤 업무를 자동화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닙니다.
일의 경계가 바뀌면서 사람과 AI 사이의 역할 경계도 다시 정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AI가 일을 더 맡을수록 인간의 판단은 왜 중요해질까
흥미로운 것은 AI의 역할이 커지는 것과 동시에 맥킨지가 인간적인 역량을 더 강조한다는 점입니다.
보고서에 소개된 히타치 사례를 보면 AI가 반복적이고 데이터 집약적인 업무를 처리하면서 직원들은 판단, 문제 해결, 가치 창출에 더 집중하게 됩니다. 엔지니어 역시 수작업 분석에 쓰던 시간을 줄이고 설계 최적화와 의사결정에 더 많은 시간을 사용합니다.
맥도날드 사례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AI가 확산될수록 신뢰, 판단, 공감과 같은 인간의 역량이 더 중요해질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리더십 조사도 같은 방향을 보여줍니다. 인간중심 리더십을 도입했을 때 나타나는 주요 조직적 효과로 응답자들은 직원 만족과 재직(56%), 신뢰 강화(56%), 의사결정 개선(42%), 조직의 적응력과 회복탄력성 향상(40%)을 꼽았습니다.
성찰을 더 많이 하는 리더 가운데 자신의 조직이 변화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다고 본 비율은 30%였고, 성찰이 줄어든 리더에서는 17%였습니다.
맥킨지가 던지는 메시지는 비교적 분명합니다.
AI가 더 많은 업무를 맡게 되더라도 사람의 역할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에게 요구되는 역할의 무게중심이 달라집니다.
여기까지는 동의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조직과 HR의 입장에서는 그다음 질문이 더 중요합니다.
판단력이 중요하다면, 조직은 그 판단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요?
개인의 판단력과 조직의 판단은 다릅니다
“앞으로 리더에게 판단력이 중요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판단력이 뛰어난 사람을 확보하는 것과 조직이 잘 판단하는 것은 같은 문제가 아닙니다.
저는 결정과 판단을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정은 여러 선택지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일에 가깝습니다. 반면 판단은 불완전한 정보 속에서 무엇을 충분하다고 볼 것인지를 인정하고 다음 행동으로 넘어가는 일입니다.
그래서 판단에는 몇 가지 질문이 따라옵니다.
무엇을 충분한 정보라고 볼 것인가.
어느 정도의 위험까지 받아들일 것인가.
누가 여기서 판단을 끝낼 권한을 갖는가.
그 결과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상황이 바뀌면 어떤 조건에서 다시 판단을 열 것인가.
이 질문들이 정해지지 않은 조직에서 “리더가 판단력을 발휘하라”고 하면 판단은 결국 개인의 경험과 직관에 의존하기 쉽습니다.
유능한 리더가 있을 때는 잘 작동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리더가 조직을 떠나면 왜 그런 판단을 했는지, 무엇을 위험으로 보았고 무엇을 충분하다고 인정했는지도 함께 사라집니다.
개인의 판단력이 조직의 판단 능력으로 전환되지 않는 것입니다.
AI가 들어오면 판단은 사라지지 않고 위치가 달라집니다
채용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AI가 지원자의 이력서를 분석해 후보자를 추려내고, 사람이 최종 면접에서 채용 여부를 결정한다고 해보겠습니다.
겉으로 보면 역할은 명확합니다.
AI는 스크리닝하고 사람은 판단합니다.
하지만 조금만 더 들어가 보면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어떤 경력을 중요하게 볼 것인지, 어떤 역량에 높은 가중치를 줄 것인지, 어떤 조건을 위험 신호로 볼 것인지, 어느 수준에서 후보자를 제외할 것인지는 AI가 후보자를 추천하기 전에 이미 정해져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도 판단이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AI가 추천한 후보와 현장 관리자가 선호하는 후보가 다르다면 또 다른 판단이 필요합니다. AI의 추천을 어느 정도까지 신뢰할 것인지, 어떤 경우에는 사람이 이를 뒤집을 수 있는지, 예외를 인정할 권한은 누구에게 있는지도 정해야 합니다.
판단이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판단이 업무의 다른 지점으로 이동하고, 사람과 AI 사이에 분산된 것입니다.
그래서 “최종 판단은 사람이 합니다”라는 원칙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더 중요한 질문은 업무의 어느 지점에서 판단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 판단의 기준과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가입니다.
판단력에서 ‘판단의 구조’로
맥킨지는 업무를 세분화하고 인간과 AI의 역할을 다시 나누며, AI가 만들어낸 결과에 대한 책임과 소유권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합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보면 새로운 질문들이 생깁니다.
판단은 업무의 어디에서 발생하는가.
그 판단에 필요한 기준은 무엇인가.
누가 판단을 끝낼 권한을 갖는가.
결과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한번 끝난 판단은 어떤 조건에서 다시 열리는가.
그리고 그 판단의 근거는 어떻게 남길 것인가.
이것은 리더 개인의 판단력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조직 안에서 판단이 작동하는 구조의 문제입니다.
AI가 업무에 더 깊이 들어올수록 이 구조는 오히려 더 중요해질 수 있습니다. 과거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이루어지던 판단이 이제는 사람, 데이터, 알고리즘, 관리자 사이 여러 지점에 걸쳐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AI 시대에는 “누가 판단했는가”만큼이나 “어디에서, 어떤 기준으로 판단이 이루어졌고 누가 그것을 끝냈는가”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결국 질문은 ‘사람이냐 AI냐’가 아닙니다
AI 시대에 인간의 판단력이 중요해진다는 말은 틀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AI에게 맡길 것인지도 판단입니다.
AI가 내놓은 결과를 언제 충분하다고 인정할 것인지도 판단입니다.
예외를 누가 받아들일 것인지도 판단입니다.
한번 끝난 판단을 어떤 조건에서 다시 열 것인지도 판단입니다.
그래서 AI 시대에 조직이 준비해야 할 것은 ‘판단력이 뛰어난 사람’만이 아닐지 모릅니다.
판단이 어디에서 일어나고, 어떤 기준과 권한으로 끝나며, 그 근거가 어떻게 남는지를 관리하는 구조가 필요합니다.
AI가 가져가는 일이 늘어날수록 오히려 그동안 사람의 경험과 직관 속에 숨어 있던 판단을 더 선명하게 드러내야 합니다.
“AI는 실행하고, 사람은 판단한다”는 간단한 구분을 넘어 이제는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AI와 사람이 함께 일하는 조직에서, 판단은 어디에서 일어나고 누가 그것을 끝낼 것인가.
출처
McKinsey & Company, The State of Organizations 2026: Three tectonic forces that are reshaping organizations, 2026.2.19.
https://www.mckinsey.com/capabilities/people-and-organizational-performance/our-insights/the-state-of-organizations